, 그들이 사용한 구전들은 여전히 본래의 구어적 형태의 일면을 보유하고 있었다.
복음이란 주로 신약성서의 처음 네 책과 같은 형식을 가진 기록된 문서들을 지칭 하는데 사용해 오고 있음.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유사성이 매우 뚜렷한 까닭에 함께 묶어 "공관" (synoptic)복음서라고 불러 왔다.
Ⅰ. 들어가는 말
공관복음의 공관(共觀)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공통 관점이라는 뜻인데,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 세 복음서를 이같이 부르고 있다. 이는 “그 기본 관점에 있어서 공관복음서가 예수의 지상 생애에 있어서 전형적이며 중요했던 사건들과
이야기 속에서 베드로에게 불리한 모든 진술들을 빼놓았다. 누가는 베드로가 처음에 했던 고백으로부터 (예수님의 꾸짖음을 생략하고) 예수의 죽음과 제자도의 소명으로 바로 이동해버렸다.
누가복음에서 ‘자기 십자가를 들고’ 라는 구절은 다른 공관복음서에 의해서 은유적으로 쓰여 졌다. 그 부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평강의 왕이시라는 사실과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써 인류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고자 마침내 수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편 본사건에 대하여선 사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다.
2. 제2차 성전 정결
<본문- 눅19:11~27>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예수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의 주장, 즉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결혼 전이나 후에 파트너가 간음을 저지른 것이 발견되었을 경우 이혼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편으로는 마태는 예수가 규정한 원칙, 즉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므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요한복음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며 익명으로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애제자)로 불린다. 그렇다면 이 ‘애제자’는 누구인가? 애제자를 가상의 인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익명으로 나온다 해서 가상의 인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전통적으로는 이 ‘애제자’를 세베대
] 사실의 확인이라는 역사비평에 치중하면서, 우리는 성경이 갖고 있는 그 귀중한 이야기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마크 알렌 포웰, 이종록 옮김, 「서사비평이란 무엇인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8쪽.
복음서의 이야기는 예수의 “이야기”이지 잡다하게 모아서 얽어놓은 자료집이 아니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복음서에서 서술하는 내용이 다르고, 서로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줄리어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 사실인지 혹은 조지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넜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단순한
2) 마태와 누가의 우선설
오랜 기간 교회는 교부들의 기록, 특별히 유세비우스의 기록을 근거로 마태복음을 최초의 복음서로 받아들였다.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의 글을 인용하면서, “장로들이 불러주는 것을 마태, 마가, 누가가 각각 그렇게 기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